
우리는 요즘 잘 지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없었다.
싸우지 않았고, 큰 다툼도 없었다.
연락은 제때 왔고, 약속도 어김없이 지켜졌다.
주말이면 늘 가던 동네를 함께 걸었고, 익숙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의 의미
정재희는 의정부에서 작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5년째.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이 길고, 손님들의 표정에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웃으며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
그래서인지 가게 문을 닫고 나면,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건 욕심일까, 기대일까.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안정
이수형은 종합병원 연구소에서 일한다.
정확한 데이터, 명확한 결과, 논리적인 설명.
그의 하루는 늘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관계에는
굳이 손을 대지 않는다.
“요즘도 괜찮지?”
그의 질문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말하는 게 더 쉬웠으니까.
3년 차, 반동거의 일상
둘은 같은 동네에 산다.
걸어서 10분 거리.
어느 쪽 집에서 자도 이상하지 않고,
굳이 짐을 챙길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함께 있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연인 사이로서 충분히 안정적인 거리.
그런데 그 거리 안에서
조금씩 놓쳐버린 것들이 있었다.
손을 잡는 횟수.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굳이 이유 없이 웃는 순간.
말하지 않은 마음들
재희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함께 있어도 각자의 생각을 하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하루를 정리한다.
그에게 서운하다고 말하고 싶다가도,
이 정도로 서운해하는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망설인다.
수형은 재희가 불만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니까.
표현하지 않으니까.
권태기의 시작은 늘 조용하다
권태기는 대개 큰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 질문이 줄어들고
- 기대가 낮아지고
- 감정을 확인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게 전부다.
재희는 그날 밤,
수형의 어깨에 기대 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러브앤웰니스의 관점에서 본 관계 신호
연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싸움이 잦을 때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될 때다.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관리되지 않으면 굳어질 뿐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누가 더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지금의 관계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다.
작은 변화의 필요성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것이다.
재희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수형은 아직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야기는,
아주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음 화 예고
2화 – 스킨십이 줄어든 이유, 서로의 솔직한 이야기
말하지 않았던 마음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