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평범한 밤.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서로의 체온은 닿지 않았다.
재희는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같은 공간, 다른 자세
수형은 소파 끝에 기대 앉아 있었다.
다리는 자연스럽게 반대 방향으로 뻗어 있었고,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재희는 가운데쯤 앉아 있었다.
괜히 자세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그의 팔에 닿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겹치거나
어깨에 기대 앉았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누가 먼저 피한 건지,
혹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지
재희는 알 수 없었다.
스킨십이 줄어든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언제부터’라는 질문에는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안아주지 않게 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손을 잡지 않게 된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래서 더 눈치채기 어려웠다.
재희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안아주지 않았지?
예전의 우리는 어땠을까
같은 동네를 걷던 초반에는
별일 없어도 손을 잡았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괜히 다리가 닿는 게 좋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아쉬워서 한 번 더 안아주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좋은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닌데,
그 감정을 확인하는 방식이 없어졌다.
괜히 예민한 건 아닐까
재희는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스킨십이 줄어든 것만으로
서운해하는 게 맞는 걸까.
서른이 넘은 연애인데,
3년이나 만난 사이인데.
다들 이쯤 되면 이런 거 아닐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검열했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
‘괜히 문제 만들지 말자.’
수형은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수형은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일은 바빴고,
하루는 늘 그렇듯 피곤했다.
그래도 재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고,
같이 잠들 준비를 하는 이 시간.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꺼낸 말
재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우리…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수형은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재희를 봤다.
“뭐가?”
그 질문은
무심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서로 다른 질문
재희가 원했던 건
이런 말이었다.
“왜 그렇게 느꼈어?”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수형이 던진 질문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야?”
그 순간,
재희는 말문이 막혔다.
감정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예전이랑 좀 다른 것 같아서.”
재희의 대답은 애매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그게 감정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수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달라졌다면, 원인이 있어야 하지 않나?
논리와 감정의 엇갈림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
“요즘 다들 이쯤 되면 그래.”
수형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재희의 마음은
그 말로 더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이건 문제가 아니라는 거네.
말하지 않은 말들
재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을 꺼낼수록
자기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형 역시 더 묻지 않았다.
대답이 명확하지 않았고,
굳이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대화는 끝났지만, 감정은 남았다
TV 소리는 다시 커졌고,
둘은 다시 각자의 화면을 보았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하지만 재희는
조금 더 멀어진 느낌을 받았다.
수형은
대화가 정리됐다고 생각했다.
스킨십이 줄어든 이유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러브앤웰니스 관점에서 보면,
스킨십 감소는 흔한 신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랑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감정 소통의 방식 차이다.
우리는 같은 답을 원하지 않았다
재희는 확신을 원했고,
수형은 원인을 원했다.
질문이 달랐고,
그래서 대답도 엇갈렸다.
이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불안을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조용히 쌓인다.
말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느끼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재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은 설명되지 않은 이유
스킨십이 줄어든 이유는
아직 말로 설명되지 않았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